이경기(영화칼럼리스트) | 2009/05/18 13:39

'미국 시사지 '타임'이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의 칸 영화제 수상 가능성을 확신했다. 타임 인터넷판은 16일 '갈증: 흡혈귀가 된 신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프랑스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박쥐'에 대해 "폐막의 밤에 중요한 상패를 받게 되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고 보도했다-인터넷 중앙일보 5월 17일자

 

‘박쥐의 현지 상영이 끝난 직후 타임 온라인판은 박찬욱 감독의 작품 중 가장 풍부하며, 가장 파격적이며, 가장 성숙한 작품이라며 수상을 확신한다고 했다’-5월 16일자 조선닷컴, 뉴스엔, 스포츠 조선 보도

 

‘송강호 역시 박쥐를 통해 국내 언론과 관객들에게 지금까지 보여준 연기를 뛰어 넘었다는 극찬을 받고 있어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5월 16일자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영화 '박쥐'가 15일 밤 열린 갈라 스크리닝에서 8분여간의 우렁찬 기립박수를 받았다’-연합 뉴스

62회 칸 영화제 경쟁부분 출품작 20편 중의 한편인 ‘박쥐’에 대해 국내 대다수 보도 매체에서 근거가 없거나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을 가미한 보도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이 확실시 된다고 인용한 온라인 타임지(www.time.com) 5월 15일자 ‘Entertainment’ 섹션에서 영화 칼럼니스트 리차드 콜리스가 파리 현지에서 전송한 ‘박쥐’ 리뷰에서는 그 어느 곳에도 황금종려상 수상이 유력시 된다거나 확신한다(awarding a favored a prize Palme d'Or, apparent Palme d'Or award winner)는 표현은 없다.

 

타임지는 ‘박쥐: 뱀파이어가 된 목사 Thirst: A Priest Becomes a Vampire’라는 표제로 보도된 리뷰 기사 결론에서 ‘이중 사면과 ’내추럴 본 킬러와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드라큐라’를 혼합한 듯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영화제 참석한 비평가들은 가장 향기로운 목이 물린 깜짝 놀랄 쾌락을 간직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것은 영화제 폐막식 밤 중요한 표창을 보장하는 것이다. 박찬욱은 ‘올드 보이’로 2004년 칸에서 2등상에 해당되는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이런 장점은 박쥐가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Blending plot elements of Double Indemnity and Natural Born Killers with the ripe sensuality of Francis Coppola's take on Dracula, the film has made festival critics sit up in startled pleasure, as if they'd just received the most luscious neck-bite. It's almost guaranteed to get an important citation on closing night. Park's Oldboy won the Grand Jury Prize, the second-place award here at Cannes, in 2004. On its merits, Thirst should do better‘라고 썼을 뿐이다.

 

하지만 이 문장은 국내 대다수 매체에서는 ‘빌리 와일더 감독의 '이중배상'과 올리버 스톤의 '내추럴 본 킬러',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를 섞어 놓은 줄거리의 '박쥐'는 놀라운 즐거움으로 칸영화제에 모인 평론가들로 하여금 자리에서 뜨지 못하도록 했다. 박찬욱 감독은 지난 2004년 '올드보이'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그 이상을 얻어갈 것이다. 폐막일 밤, 커다란 상을 받게 될 것을 확신한다며 '박쥐'가 이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유력한 후보라고 밝혔다’ 또는 ‘타임 온라인판은 '박쥐 - 뱀파이어가 된 신부'라는 제목으로 리뷰를 올린 뒤 "박찬욱 감독의 작품 중 가장 풍부하고 전위적이며 성숙한 작품이다. 칸 영화제 수상을 확신한다"고 호평했다-5월 16일자 마이 데일리,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등 흡사 황금종려상 수상을 기정 사실화 시킨 표현으로 왜곡해 보도하고 있다.

 

국제 정치, 사회, 환경 보도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시사지 타임이 기사를 통해 칸 영화제 동향을 언급할 수 있지만 수상 예정작을 단정할 아무런 권한은 갖고 있지 않다.

 

수상작(자)은 오직 칸 심사위원단만이 행사할 수 있는 독자적이고 배타적인 권리다.

 

또한 ‘박쥐'는 스크리닝에서 8분여간 우렁찬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현장 분위기 르포는 형식과 예절을 중요시하는 칸의 경우 경쟁작 20여편이 순차적으로 상영된 뒤 으례적인 환대를 보내는 것을 흡사 ’박쥐‘만이 특별한 환영을 받았다는 오해를 줄 수 있는 문귀를 사용하고 있다.

 

한술 더 떠 대부분의 스포츠 신문 영화면에서는 ‘심사위원 중 이창동 감독이 있어 ’박쥐‘의 수상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같은 보도는 자칫 심사위원은 자국 출품작에 무조건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는 맹목적 애국심을 강요하는 것으로 받아 들여져 국제 영화제에 대한 권위를 손상시킬 위험한 주문이다.

 

한국 감독이기 때문에 한국 출품작이 수상할 수 있도록 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가정한다면 2009년 심사위원 중 중국 배우 서기는 중국 출품작에 1표를 던질 것도 예상해야 한다.

 

참고적으로 2009년 본선 20편 중 중국권 영화는 이안 감독의 ‘테이킹 우드스탁 Taking Woodstock’을 비롯해 홍콩 두기봉 감독의 ‘복수 Vengeance’, 중국 로예(婁燁) 감독의 ‘스프링 피버 Spring Fever’, 대만 차이밍량 감독의 ‘페이스 Face’ 등 무려 4편이므로 1편에 불과한 한국은 이미 숫자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다.

 

2009년 경쟁 부문 20편중 Variety, hollywood reporter 등 권위 있는 유력 영화 매체에서는 93년 ‘피아노’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뉴질랜드 출신의 제인 캠피온 감독의 출품작인 ‘브라이트 스타 Bright Star’에 대해 ‘캠피온 감독의 영화에 대해 몇몇 비평가들은 그녀가 2번째 황금종려상을 가져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Campion's film, with several critics at Cannes suggesting that it may win her a second Palme d'Or’고 언급하고 있다.

 

이외 ‘박쥐’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브래드 피트를 기용해서 선보인 ‘인글로리어스 바스터즈’를 비롯해 켄 로치의 ‘루킹 포 에릭 Looking for Eric’, 라스 폰 트리에의 ‘앤티크리스트 Antichrist’ 등이 이미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할리우드와 유럽권 거물 감독과 힘겨운 수상 경쟁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현재 무분별하게 보도되고 있는 ‘박쥐’ 황금종려상 수상 예측 운운은 오히려 마이너스적인 요소가 될 소지도 있다.

 

한국 언론인으로는 유일하게 LA에서 진행되는 골든글로브 심사위원인 최명찬 기자는 ‘오락성과 대중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할리우드와는 달리 예술성을 중요시하는 칸 영화제는 국가적 위상, 감독의 대외인지도, 향후 창작 능력, 행사 연도의 국제 정치적 움직임 그리고 심사위원단의 성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돼 수상작을 결정한다’고 밝히면서 ‘지금 언급되고 있는 국내 매체들의 아전인수적인 보도는 보다 냉정해 질 필요가 있다’고 따끔한 주문을 하고 있다.

 

쟁쟁한 유럽 및 서구 감독의 작품을 제치고 ‘박쥐’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는 ‘기적’이다.

 

한국 언론들은 지금 냄비 근성을 발휘해 ‘칸에서 예수의 환생을 바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일 이러한 엄청난 사건이 벌어져 ‘박쥐’가 수상한다면 그것은 타임지의 리차드 콜리스의 표현대로 ‘한국 영화계의 위상이 세계적인 것으로 급부상하는 것이 아닌 ‘그저 더 좋은 일일 뿐이다 do better‘.

 

2002년 월드컵 4강에서 맞붙어 한국에게 패배를 안겨준 터키는 이미 1982년 일마즈 귀니 감독의 ‘욜 Yol'로 황금종려상을 가져갔다.

 

아시아권에서는 일본 이마무라 쇼헤이의 ‘우나기’와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체리향기’가 제50회(1997) 공동 수상작으로 선정됐고, 중국 체 카이거 감독은 뉴질랜드 제인 캠피온 감독의 ‘피아노’와 함께 제 46회(1993년) 공동 황금종려상 수상작의 영예를 차지했다. 이들 나라가 지금 세계적인 영화 강국으로 대접받는가?

 

국제 영화제의 수상은 국운(國運)을 흔드는 경사라기 보다는 예술 창작인 개인의 영예일 뿐이다.

 

62회 심사위원단은 위원장에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를 필두로 해서 이태리 배우 아시아 아르젠토, 터키 감독 누리 빌제 세일란, 미국 감독 제임스 그레이, 미국 배우 로빈 라이트 펜, 중국 배우 수치(서기,舒淇), 한국의 이창동 등이다.

 

62회 칸 국제 영화제 황금종려상 및 주요 부분상은 수상작(자)는 현지 시간 5월 24일 폐막식 때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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